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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1학기

3 - 1 역사 [ 일제의 침탈과 국권 수호 운동 ]

1.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다.

1) 러, 일 전쟁의 발발과 일본군의 진주

- 러일전쟁의 발단

러시아와 일본이 만주와 한반도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전쟁 돌입

- 러일전쟁의 전개

1. 대한 제국은 전쟁 발발 이전에 전시 중립을 선언하였으나,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대규모 군대 파견

2. 일본이 대한 제국을 압박하여 전략상 필요한 대한 제국의 영토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일 의정서 체결

3. 재정과 외교 부분에 일본의 추천을 받은 고문을 피견하여 대한 제국의 내정을 간섭

4.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 후 프츠머스 조약으로 한반도에 대한 우원적 지위를 승인받음.

 

2) 을사조약과 외교권 박탈
 ① 을사조약의 체결(1905): 일본이 러․일 전쟁에서 승리 후 강압적으로 체결
 ② 을사조약의 내용: 통감부 설치, 외교권 박탈

 ③ 을사조약이 무효인 이유
 - 고종 황제가 외무대신 박제순에게 조약 체결을 대신하라고 위임장을 내린 바 
 없고, 조약 체결에 대한 비준을 한 적도 없음
 - 조약 체결 과정이 우리나라 의정부 회의의 절차를 어겼을 뿐 아니라 무력과 
 강제에 따른 것이므로 국제법상으로도 무효 요건에 해당함


3) 을사조약 무효 투쟁과 그 결과: 헤이그 특사 파견과 고종 황제의 강제 퇴위

헤이그특사 파견: 을사조약의 무효와 일본의 불법적 국권 침탈 호소➜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1907)에 참석 하지 못했지만, 국제 사회의 관심과 언론을 이용해 일본의 부당성을 알림 
➜ 일제가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 황제를 강제 퇴위 시킴 ➜ 한·일 신협약
체결로 일본인이 대한 제국의 차관에 임명되어 실권 장악➜ 순종을 협박하여 군대 해산, 일부 해산 군인과 장교들은 무기를 들고 전국의 의병 부대에 합류

 

★ 일제의 국권 침탈과 저항(요약정리)

을사조약 (1905)

외교권 박탈, 통감부 설치

 

고종 강제 퇴위 (1907)

헤이그특사 구실로 강제 퇴위됨

 

한, 일 신협약 (1907)

일본인이 행정 각부의 차관으로 임명 -> 대한 제국의 내정 장악

 

군대 해산 → 사법권・ 경찰권 박탈→ 한・일 병합 조약 체결(1910)

 

2) 독도와 간도

 ⑴ 러・일 전쟁 중 일본이 ‘시마네 현 고시 제40호’를 발표하여 독도를 일본 영토에 편입하였다.
 ⑵ 을사조약 체결 이후 일본이 만주의 철도 부설권을 얻기 위해 청과 간도협약을 체결하여 간도를 청의 영토로 인정하였다.

 

2. 일제 침탈과 국권 수호 운동

1) 항일 의병 전쟁

 

2) 의거 활동

나인영, 오기호 :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자신회 조직

이재명 : 이완용을 칼로 찔러 부상을 입힘

전명훈, 장인환 :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친일 외교 고문 스티븐스 사살

안중근 :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 사살

 

3) 애국 계몽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