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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중학교 2학년 역사 4단원 고려의 성립과 변천

1. 고려의 건국과 후삼국 통일

1) 고려의 건국

궁예가 실정으로 민심을 잃음 송악의 호족이었던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름(918)

고려 :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라는 의미

개경 : 자신의 기반이었던 송악으로 수도를 옮김

 

2) 후삼국의 통일

세금 감소 = 민심획득

호족을 포섭해 지배 체제 정비 -> 후백제와 대립, 신라와 우호관계

 

공산전투(927) : 후백제의 견훤이 경주를 기습 공격하여 전투가 벌어졌으며 고려가 크게 패배

고창전투(930) : 고창(안동)에서 고려가 후백제를 크게 이겨 후삼국 통일의 기반 마련

 

신라의 멸망(935) :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스스로 항복해 고려에 나라를 넘김

후백제 멸망(936) : 왕위를 둘러싼 내분에서 패한 견훤이 고려에 투항. 후삼국 통일

 

3) 태조의 정책

태조의 훈요 10조

첫째, 국가의 대업이 제불(諸佛)의 호위와 지덕(地德)에 힘입었으니 불교를 잘 위할 것. 

둘째, 사사(寺社)의 쟁탈·남조(濫造)를 금할 것. 

셋째, 왕위계승은 적자적손(嫡者嫡孫)을 원칙으로 하되 장자가 불초(不肖)할 때에는 인망 있는 자가 대통을 이을 것. 

넷째, 중국의 풍속을 억지로 따르지 말고 거란 등 야만국의 풍속을 배격할 것. 

다섯째, 서경(西京)을 중시할 것.

여섯째, 연등회(燃燈會)·팔관회(八關會) 등의 중요한 행사를 소홀히 다루지 말 것. 

일곱째, 왕이 된 자는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여 민심을 얻을 것. 

여덟째, 차현(車峴) 이남 공주강(公州江) 밖은 산형지세(山形地勢)가 배역(背逆)하니 그 지방의 사람을 등용하지 말 것. 

아홉째, 백관의 기록을 공평히 정해줄 것. 열째, 널리 경사(經史)를 보아 지금을 경계할 것.

 

1. 북진정책 : 고구려 계승 의식, 서경 중요시, 거란 적대시

2. 민족 통합, 민생 안정 : 후백제와 신라유민, 발해 유민 포섭. 세금을 줄이고 가난으로 노비가 된 사람을 양인으로 해방.

3. 호족 세력 포섭 : 유력 호족과 혼인, 왕씨 성 하사, 사심관 제도, 기인 제도

3-1) 기인 제도 : 지방 호족의 자제들을 인질로 뽑아 개경에 머물도록 한 제도

3-2) 사심관 제도 : 개경의 호족 출신 공신들로 하여금 자신의 출신 지역을 관리하도록 한 제도

 

* 후삼국 통일의 의의

  • 신라와 옛 고구려, 백제 출신 세력과 발해 유민 수용으로 진정한 통합의 완성
  • 골품제를 벗어나 새로운 지배층이 등장하며 신라에 비해 정치 참여 세력이 확대되었다.
  • 외게의 간섭 없이 이룬 자주적 통일

2. 고려, 새 나라의 기틀을 다지다.

1) 광종의 정책

 1. 노비안검법 실시

 -> 호족이 불법 소유한 노비를 양인으로 해방시킴

 목적 : 호족의 경제군사 세력 약화, 국가 재정 확보

 

 2. 과거제 실시(쌍기의 건의로 실시)

 -> 유교적 학식과 능력에 따라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

 

 3. 정책에 불만을 가진 공신과 호족을 숙청하고 독자적인 연호(광덕, 준풍 등) 사용

 -> 왕권 강화

 

2) 성종의 정책

 1. 최승로의 시무 28조 : 성종의 명을 받아 최승로가 국가에서 시급히 해야 할 28가지를 작성.

 =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고 통치 체제를 정비, 국가 통치의 근본 이념으로서 유학을 강조함

 2. 중앙집권화

 -> 지방관을 파견하고 지방의 호족을 향리로 편입